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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기에 강하고, 강하기에 위태롭지 않다

Personal Finance/Bitcoin

by 빌리 조 2021. 8. 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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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말하기를, “쓸모없음이 있기에 쓸모있음이 있다. 몬생긴게 있기에 잘생긴게 있다.”

비트코인을 보면 이런 생각에 잠긴다. 투박하기에, 리더쉽이 없기에, 누구 거래를 하든 가치판단을 하지 않기에 공격과 공경을 동시에 받는거 같다. 

중학교때 남들 다 쓰고 싶은 외국어 가르칠때 우리 중학교만 유일하게 한문을 가르쳤다. 쓸모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 돌이켜보면 한문시간만큼 내 뇌리에 아직 남은 교육도 없는 거 같다.

한문시간에 배웠던 공자, 노자, 장자의 얘기가 어느새 무의식 속 한 공간을 스며들어 흐느낄때가 있다. 

그래서 모르는거다. 그래서 뭐든 배워보라는거 같다.

스티브 잡스도 붓글씨체를 재미 삼아 배웠는데 맥킨토시 만들때 썻다고 했지 않았나?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시간들이 쓸모있는 시간이 될지어니, 미래의 일은 하늘에 맡기고 현재 내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지. 

대학에서 배운 서양미술사도 그렇다. 고흐의 작품에 감동하지 못했고, 마네와 모네 둘의 차이를 몰랐다.

교육의 주목적이 ‘전인교육’이라 하지 않는가? 더 나은 인간이 되어보자고 배우는게 아닐까?

삶을 예술로서 풀어내어 스스로 성찰해봐야하는데 뭐든 결론에 도달하려는 습관은 잠시 내려놓자. 

"You can only connect the dots looking backward not forward."

예술이라는게 행위 그 자체이다. 피카소의 작품을 보면 디테일하게 그리다가 나중에 가선 선으로만 표현한다.

이렇듯 지식도 디테일하게 파고들면 심플한게 명확히 보일때 까지 파고 들어가야 한다. 

잡스도 ,이소룡도, 쇼팽도 말했다. 간단함 그것은 복잡함에 끝에 갔을때 나온다.

우린 정답을 바로 원한다. 특히 한국과 같이 오지선다식 객관식 문제에 익숙한 교육의 행태도 이에 기인한다.

난 대학다닐때 에세이를 좋아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주제에 맞는 말을 하기를 좋아했다. 

객관식문제는 채점자를 위한 것이지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정말 뭘 배워보고 싶으면 일단 본인 스스로 배운 내용을 글을 쓰든 유튜브를 찍든해서 직접강의를 해야 한다.

사실 좋은 학생이란 선생님처럼 아니 오히려 더 쉽게 아이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교육에는 끝이 있을 수 있으나 배움에는 끝이 없다. 배우는 것은 성찰을 통해 성장을 하는 것이다.

책상에서만 배우는게 아니라 책상 밖에서 나의 주관적 경험과 남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배우며 온고지신의 자세로 새로운 것과 옛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싯다르타가 책상에 앉아서 부처가 된 갓이 아니다. 명상이라는 행위를 통해 그리고 성 밖 사람들을 보며 경험과 남들의 고난을 통해 본인 스스로를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했다.

고타마가 원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배운 것을 스스로 행한 어떤 개인의 일대기를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우린 뭔가를 외우려하고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외운 것은 잊혀지고 이해한 것은 뇌리에 남는다. 이해를 통해 새로운 문물을 보는 눈을 기른다. 

지식은 무한하다. 무한한 지식의 세계는 질문과 ‘좋은설명’을 찾아가려는 하나의 여정이 아닐까?

그리고 이 이해라는 것은 한번에 바로되기보다 서서히 잡힌다. 

음식도 그렇고 배움도 소화하는 시간이 걸린다. 

이 소화하는 시간을 걷기를 통해 장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듯 뇌운동 역시 활동적으로 일어나는거 같다.

결론

외운 자 이해한 자를 따라가지 못한다.
외운 것을 스스로 설명하며 아이들에게도 설명한다면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 계속 내뱉어야 한다. 글을 써도 되고 유튜브를 해도된다. 
선생님들도 이해하기 위해 외운 것을 내뱉는거 같다.

비트코인에 감탄하는 이유는 복잡함을 간단함으로 풀어낸 사토시 나가모토라는 어떤 이름 모를 인간의 사상이 
이소룡이 말했듯, 한 발차기를 몇 천번 하는 것이 몇 천개의 발차기를 한 번 하는 것 보다 더 대단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투박하기에 강하고, 강하기에 위태롭지 않다.
검은색 투박하고 심플하고 시크하기에 오히려 유행을 덜 타듯이…비트코인은 검은색 그 자체이다. 

마치 노자가 본인은 암흑에서 나왔다고 하는 말처럼. 
소설이지만 이런 점에서 동양철학 특히 노자의 도덕경을 다들 읽어보면서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갔으면 합니다.

참고글: 노자 - 도덕경 [feat. 돈이 전부(全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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