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첨으로 오징어 게임을 보았다.
앞에 4편정도 봤는데, 버릇이지만 영화나 소설을 읽으면 그것을 내 상황에 접목시키는게 있다. 고 삼성 이건희회장의 책 <이건희 에세이>에서도 이회장님께서 영화를 즐겨보셨다고 읽었고, 영화 바깥에 있는 사람들까지 3차원적 생각이 인상깊었다.
먼저, 게임에 참가하는 것 부터가 문제이다. 손자의 '불태' 즉 위태롭지 않음을 무시한채 일확천금 (선물, 경마, 등), 본인의 돈그릇보다 더 큰 돈을 따기위해 본인을 위태롭게하여 '오징어게임'에 본인 목숨을 담보로 참여한다.
첫번째게임<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첫 참가자가 죽을때는 모두가 "설마"했다. 그러다가 2번째 참가자가 죽고 그의 피가 뒤에있던 사람에게 튀겨, 그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출구'를 향해 뛰어갔다. 게임의 규칙을 어겨 출구에 있던 모두 사살당했다. 자산시장이 공황일때가 이렇다.
첫번째와 두번째 참가자 모두 "누가 빨리 가느냐?"를 100만원 내기를 걸었다. (참가자 목숨당 1억인지 모른채) 젊은 2030대 같이 보이는 둘이서 그런 내기를 했고, 먼저 가려다가 규칙에 어긋난 행동을 하니깐 바로 잘려나갔다. 코인시장이랑 뭐가 다른가? 그러니깐 근본이 있는 메이저코인들에 그리고 우량주에 투자하라는 이유가 아닐까?
빨리가더라도, 가는 중간에 죽어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렇기에 저번 트위터스페이스 할 때 한 20대 현역군인분이 오셨는데, 본인도 모르게 알트코인 중에서 급등하는 녀석에게 눈길이 간다고했다. 그 분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었거니와 나 역시 매분매초 그런 '급등주, 코인'에 눈길이 간다. 사람이니깐.
예쁜사람이 길을 걸으면 남녀노소 불구하고,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그런데 황진이와 같이 절세미인을 대하는 법은 그를 나의 친구 그 이상으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즉 내가 품을 수 없는 거라 빨리 인정한다.) 사실 본인의 행복도 관점에서 봤을때 내가 사귀는 사람이 남들이 봐도 인물이면 많이 골치 아파진다. 적당함이 여기서도 중요.
자본주의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1. 참가자 모두 자본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강제적이지는 않다. (아무리가 금리가 낮더라도)
2. 게임에 참여한 이상 시장을 잘 나갈 수 없다. 왜? 한 번 돈에 맛들리면 돈을 많이 따서 부자가 되거나 빈자가 되어나간다...카지노의 도박꾼들과 비슷
하수는 간단함을 복잡함으로 만들고,
— 빌리 조 (Billy ₿. Jo) (@BillyJoTimes) October 17, 2021
고수는 복잡함을 간단함으로 만든다.
미련한자는 복잡함을 더 복잡함으로 만들고,
깨우친자는 간담함을 더 간단함으로 만든다.
여러 다른 규칙들이 있지만, 이 자본주의게임과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다른 점이 몇가지 있다.
먼저 '부의 게임'은 포지티브섬 게임이다. 즉 파이가 점차 늘어난다. 100여년전 전기는 부자의 산물이였지만 지금은 모두가 쓰고, 영상통화가 50년대에 엄청비싸서 상용화가 못되었으나, 지금은 모두가 씀.
모두가 몸짱이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없고,
— 빌리 조 (Billy ₿. Jo) (@BillyJoTimes) October 17, 2021
모두가 화목한 가정을 일굴 수 있지만, 아무나 일굴 수 없으며,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부자가 되는게 아니다.
즉, 건강, 사랑, 부와 같이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가치들은 남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쟁취할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제로섬게임이다. 누군가를 밟고 제거해야 된다. 제로섬게임을 인간적으로 풀어낸게 '스포츠'이다. 정치도 제로섬게임을 통해 누가 리더가 되어 사회를 이끌어나가는지 경쟁시킨다. 제로섬게임의 특징은 승리자와 패배자가 객관적으로 나뉘어진다 .
그런데 부의게임과 같은 포지티브섬게임의 특징은 참가자 전원이 뭔가 보상을 얻는다.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며 겪는 물질적인 고통의 차이는 1960-70년대의 한국이 겪었던 물질적인 고통의 차이에 비하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우린 '부'를 상대적관점에서 봐라본다.
사실 난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생각한다. 물론 인플레로 인한 물가 폭등과 purchasing power(화폐가치하락으로 인한 소비파워위축)땜에 모두가 제로섬게임이 되는게 아니냐고 생각 할 수 있지만, 또 우리가 진정으로 참된 '자본주의'를 가졌느냐고도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우리가 '부'의게임을 안했다면 아직도 원시인처럼 부싯돌로 동굴에 불을 피우고 살아갔을터이다. 부의게임 그리고 포지티브섬게임에대한 이해를 많은 대중매체에서 저해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우리 인간이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파이가 커져도, 나의 파이가 점점작아져보이니...
모두가 파이를 더욱 크게 살쮜어 파이를 더 크게 만든사람에게 더 큰 파이조각을 줄것인가? 아님 모두가 파이를 조그맣게 만들어 균일하게 분배할 것인가? 이것이 미국과 소련이 했던 20세기 '오징어 게임'이였다. 결론은 정답은 없을 수 있다.
단, 작은 파이의 균일하게 분등된 파이크기가 큰 파이의 가장 작은조각보다 작다면 어떡할 것인가?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이다. 공산주의는 공상주의이다. 공상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을 현실세계에서 할려고 하니 인간의 본성과 들어맞지 않아, 골로간다. 간단한 이치이다.
오징어게임 첫게임만해도 이렇게 배운점이 많고, 그 외에 줄달리기를 통해서 배우는 점도 있지만, 다음시간에 이어서...내가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안볼려는게 뇌리에 심하게 남으면 하루 종일 그거에대해 생각하는 그런 '평론가'적인게 있어서...
必生則死 必死則生 - 충무공 이순신
1번참가자 할아버지는 어차피 좀 있으면 본인이 죽을터이니 여기서 죽나 저기서 죽나 똑같다고 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그의 리더십은 줄달리기에서 빛이 났다. 조직화된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런게 중앙통제와 탈중앙화도 연관이 있을거 같다.
두번째 달고나게임과 세번째게임 줄달리기 사이에서 일어난 2.5번째게임이 인상깊었다. 아무런 룰도 없이 죽고죽이는 게임인데, 이걸 자산시장에 대입해보면, 그런 혼돈이 발생했을때 누구에게 부탁할 것인가? 말려야 될 제3자가 오히려 그걸 즐긴다면 게임참여자는 어떡할것인가?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지금 보니깐 저기 건달같이 생긴 사람밑에 5명의 남정네와 1명의 여자가 있다. 총 6명이고, 참가자가 200명정도 남았으니, 우리가 그의 쪽수에 10배인 60명만 모으고, 같이 진을 형성해서 싸운다면 승산이 있다. 어차피 죽일려고 덤벼드는 녀석들은 저 6명의 미꾸라지들이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둥글게 진을 형성하고, 서로 등을 맞대고 앞을 보며, 무기를 하나씩들되, 절대 다른이를 헤치지말고, 더욱 원을 크게 만들어나가자. 그렇게 그 6명이 원 안으로 들어왔을때 일제히 뒤를 돌아 그들을 때려죽여라. 숏쟁이들을 죽이는 방법이기도하다.
근데 이게 실전에서 써먹힐지 의문이든다. 일단 참가자들 서로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날 믿고 저 6명의 미꾸라지들을 무너뜨리자는게 어찌되나? 여기서 '비트코인'을 대표로하는 '시장'의 순기능이 나오는데 모르는 사람들끼리 '가격'을 통해 미꾸라지들을 없앤다.
미꾸라지들이 제거되었다고 해서 오징어게임이 종료되지는 않으나, 일단 살고봐야 한다. 그렇기에 '생'을 확보한다는 확신을 준다면 건달 6명을 60여명의 사람이 제압하는건 힘들지 않다. 교도관들이나 포로관리자들이 싫어하는게 저런 '리더'와 같은 사람들이 조직화시키는 것이다.
아무리 총을 들고 있다하더라도 쪽수가 많고, 결집만 잘 된다면, 감시가 덜한 틈을 타, 포로감독관을 되로 포로로 만들 수 있다...그런데 그렇게 안하기 위해서 베트콩같은 경우에는 '독방'에 6명씩만 가두기도 함. 단체로 묶어 놓으면 뭔 짓을 할지모르니.
오징어게임이 인상 깊었던게 숙소배정이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번호에 의해서만 묶어놓았다. 약간 아우슈위츠 수용소를 방불케하는 모양새였지만 남녀노소를 묶어 놓은 이유는..뭐 작가의 의도는 그 사람이 잘 알겠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오징어게임에 참여할 수 밖에없는 처지를 대변한다 생각.
암튼 그 2.5번째게임이 인상 깊었던게,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가 다른 검투사들에게 둥글게 진을 형성하고, 마차를 공격하자고 말하니깐 일단 모두가 살고보려고 막시무스와 함께 진을 형성했다. 군대에서 괜히 '오와 열'을 강조하는게 아니다. 진을 형성하여 조직화시키면 혼돈에서 승산이 있다.
지금 트위터와 같은 투자커뮤니티가 그렇다. 각 자가 각 자의 무기를 들고 장이 떨어질때 천둥번개가 치는 듯 장이 깜빡깜빡거려도...모두가 미쳤을때 미치지 않고 차분하다면, 분명 그 사람은 부자가 될 자질이 있다. 어찌 시련 하나 없이 부자가 되려 하는가...?
비트코인이 인상 깊은거는 그런 '장군' 또는 '리더'없이도, 착착착 돌아가는 시스템을 인류최초로 글로벌 스케일로 구현했기때문이다. 즉, 키맨리스크가 없다. 사실 일런머스크와 같은 천재CEO 기업들과 완전히 대비된다...단 속도면에서 특히 초반부에는 리더가 없으면 죽거나 느릴 수 있음.
근데 비트코인이 처음 나왔더 2010년도즘에 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은걸로보아...엘리트들의 (고의든 아니든) 좋은 실수이지 않을까싶다...역시 크리에이터는 이 인간들에게 기회를 준다...단 그걸 기회로 보느냐 아님 무시하고 사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하도 그런 썩은 동앗줄이 많으니깐 세상엔...
"떡하나주면 안잡아먹지"라고 했던 호랑이할매가 아이들을 잡아먹기위해 동앗줄을 올라탔는데 썩은 동앗줄이라고 했다. 할머니만 잡아먹고 그냥 떠나고, 조금 여유를 두고, 아이들이 할머니를 찾아올때 그 길목에서 잡아먹었다면 어땟을까 생각함.
결론
노련한 사냥꾼은 길목을 지키고, 초보는 쫓아다님.
즉 투자의 원칙은 '불태'이다. 위태로우면 안되는데, 위태롭지 않기 위해선 '적당히'를 알아야한다.
다른말로, 내 돈그릇보다 더 큰 탐욕을 경계해야한다. 탐욕이란 나의 그릇보다 과분하게 원하는 마음이다.
그릇이 크고 단단하다면 돈은 결국 쏟아지게 되어있다.
그때까지 살아남아보자.
돈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다. 돈을 자기 돈그릇보다 더 원하는 그 ‘탐욕’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 빌리 조 (Billy ₿. Jo) (@BillyJoTimes) October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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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Billy: 자본주의 라식수술 '쫌'문가의 Open-Source Diary (Advice to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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