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인생은 고단하단다."
어렷을때 엄마가 나한테 해준 말이다.
난 인생은 원래 고단하고 대체로 사는게 쉽지 않다는 말을 많이듣고 자랐다.
"우리의 두뇌에 도파민이 넘치면 문자 메시지, 트윗, 온라인 쇼핑과 같은 디지털 즐거움이 완전히 중독될 수 있습니다." - 월스트릿저널
내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본 것은 6살때 아빠가 삼보컴퓨터를 사왔을 때이다. 처음 한글을 통해 타이핑 했을때가 기억난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뭘 만들어 오라고 했는데 아빠가 대신 타이핑해 줬던 기억이 있다. 아빠는 본인이 작업복에 기름 묻히며 자식을 살고 싶지 않으셨다.
어찌어찌해서 미국에 유학와서 경상도에서만 몇 천년을 보낸 평범한 집안의 내가 세계최고의 명문대에 입성했다. 감회가 새로웠다. 학교 성적도 좋지 않았지만 그 놈의 글쓰기 실력으로 붙었고, 한국군대 얘기를 맛깔나게 써서 붙었다고 나름 자부한다. 그렇게 들어갔는데 대학은 내 생각과 달랐다.
좀 배웠다던 사람들이 전방에서 짬밥을 먹고 나온 내 눈에는 모든게 애들 소꿉장난처럼 보였다. 북한주민들을 철책을 뒤로하고 보고 온 뒤 대체 뭐가 힘든지 이해를 못했다. 심지어 해 쨍쨍한 캘리포니아에서 뭐가 춥다고 다들 엄살이였는지...
"당신은 아직 추위를 제대로 경험해보지 않았다" 내가 한국서부전선에서 받은 살이 아려오는 추위는 부산이 고향인 나에게 너무 맞지 않았고, 절대 추운데서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추워? 이병이 추우면 되나?" 선임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나도 짬차고 춥다카면 계속 그랬다.
또 한국은 여름엔 또 어떤가...습하게 덥고 특히 탄띠메고 전투쪼끼를 입는 보병의 특성상 말복에 더워 뒤질거 같을때가 많았다.
약 20-30분을 기동해서 초소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하는게 하의탈의였다. 거기는 시원해야 하니깐. 그리고 자신있었기에.
여름에 또 모기란 모기는 그렇게 크고 많은지 말라리아약도 먹었다.
그런 기후를 겪고 대학에 돌아오니 지상낙원이였다. 밭에서 모내기하는 북한사람들과 할매들만 보고 왔는데 어여쁜 아가씨들이 얼마나 많던지, 처음 복학했을 때 엄청 신기한 경험을 했던거 같다.
그렇게 난 결심했다. 학업보다 연애가 중요하다!
자유를 잃어본 사람만 자유의 소중함을 안다.
난 원래 군대 가기 싫었다. 누군가한테 구속받기 싫어한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피할 구멍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말했지 않았는가? "돼지고기를 이왕 먹을거면 아주 기름진 부위를 먹어라!"
그래서 그때 나의 신체 조건에서 가장 빡센대로 갔고 꿀빠는데 안가서 매우 후회했다.
그러나 어쩌리 그냥 빨리 군생활 끝내고 싶어서 육군이랑 복무기간 똑같은 해병대 선택했고, 별 희한한 사람도 많이 만났다. 그때 거기서 여러 청년들을 만났는데 제주도에서 올라온 동기, 전라도, 경상도 어느 시골마을에서 올라온 선임이며 각기 다른 출신들이 한데 모여있는게 신기했다.
난 대학에서 별로 배운게 없었다.
오히려 군대에서 더 많은 걸 배우고 나왔다. 뭐라고 콕 찝어서 설명은 못해주겠지만,
암튼 인생이 원래 ㅈ 같은 거라는걸 많이 배웠다. 사회생활 할때 어떻게 윗사람과 아랫사람한테 샤바샤바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물론 수류탄도 던지고 전술훈련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원래 인생은 고단한거야!" 라는 것이다. 엄마가 어렷을때 주입했던 것들이 생각났다. 돈도 없고 고졸학력에 할 수 있었던 것 도 없었고.. 그렇게 고단하지만 하나하나씩 해결해나가며 살다보니 어저께 부모님께서 새 아파트 계약금 내러간다고 자랑하시더라...
왜 힘들다고 그럴까? 힘듬이 대체 뭔지는 알고 하는 말일까? 후쿠시마 원전이 터졌을때 당시 난 중학생이였는데 신문기사에 이런 걸 봤던 기억이 있다.
"미국인은 사고가 생기면 오열하는데 일본인은 오열하지 않는 이유" 기사가 유독 신기했다. 심지어 미국기자가 물었던걸로 기억.
그 기자는 이렇게 써내려갔다, "일본인들도 당연히 슬프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못한 사람이 있을거 같아 남들 보이는데 앞에서 울지 않는다" 카더라 통신이다. 맞는지 틀렸는지는 모르겠다. 눈 앞에서 사랑하는 이와 내 재산이 떠내려가는데 슬퍼하지 않으면 붓다지 일반인이 아닐꺼다.
우린 우리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코로나시국에 잘 가던 주짓수학원도 문닫고 할 거 없어서 글을 쓰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여러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고딩때부터 접었던 컴터게임도 다시 할 수 있었고, 주짓수땜에 술도 끊었는데 술도 마실 수 있었다. 그런데 재미가 없더라..
같이 게임할 친구도 술마실 친구도 없는 아싸이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온라인에 희갈기는게 재밌어졌다. 원래 책을 좋아했지만 어디 욕구해소 할 때가 없었는데 내 글을 읽고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신기했다. 사실 맞춤법도 다 틀릴텐데...역시 메시지는 통하는 갑다.
인간존재의 이유가 뭔가? 존나 재밌게 사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의 이유이자 존재 그 자체이다.
어떤 특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원래 사는 거 그 자체는 재미 즉 놀이 그 자체이다.
이 광활한 멀티버스에 태어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유인원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인류의 탄생과정 그 자체가 기적 이였고, 부모님이 만나서 날 낳은거며, 몇 백만개의 정자 중 하나인 나가 엄마의 난자에 만나 내가 된 것은 얼마나 대단한가...
인류학, 생물학과 천체물리학을 배우면 삶 그 자체가 행운이라는 것을 느낀다. 이런 행운과 같은 삶에 태어났는데 인생은 힘들다.
삶은 분명 고단하다. 안되는 일이 더 많고 되는 일은 적다. 나의 능력은 분명 정해져 있고, 내가 태어난 시대, 나라, 부모, 나의 성격 역시 타고난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데 계속 어쩌라고 현대 지식인들이 가르치는데,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되는대로. 있는대로. 삶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존재의 이유는 존나 재미있게 사는 그 자체 놀이이다. 재밌는 삶이란 32평짜리 아파트따위가 아니다. 재밌는 삶이란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다. 재밌는 삶은 소확행보다 앞으로 태어날 이들이 더욱 재밌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희생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안되는건 안된다고 설명하면 기고만장 해지지 않는다. 되는건 되고, 안되는건 안된다. 안되는데 억지로 하면 허송세월 낭비한다. 한 번해보고 안되면 그만둘줄 알고 다른일을 알아보는 것이 빨리 바뀌는 시대의 미덕이다. 천천히 바뀌는 시대에선 한 번 했으면 계속해야하는 것이 미덕이고.
삶이란 그렇게 녹녹지 않아서, 책 한권, 멘토 따위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매일 배우고, 깨지고, 시도해보고, 그래도 안된다. 안되는데 계속해본다.
해보고나서 하는 후회는 반성이라도 되니깐. 어차피 인간은 후회한다. 근데 짧게 후회하는 방법이 있다. 일단 해보는 것이다.
사랑고백같은 것도 일단 지르는게 좋다. 질러보고 아니다 싶음 다른 사람에게 가면 된다.
"이것이 전부다. 이 여자여만 된다." 이런 것은 없다. 삶에 기회라는 공은 계속 들어온다.
투자를 야구에 빗대 듯 삶 그자체가 삼진아웃이 없고 재밌게 살아가야 하는데 오늘도 도파민 스낵을 먹고 골아떨어져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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